24.05 07 화요일 큐티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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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치훈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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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7 화요일 QT
[사도행전 4장 1-12절]
1.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2.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3.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5. 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6.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7.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9.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
1.세상은 원래 복음을 싫어하고 그리스도인을 가두고 핍박한다.
2.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성령이 충만함을 받아서 내 신변의 위협과 상관없이 전한다.
<묵상, 적용>
제사장,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는걸 싫어했다. 핍박하고 감옥에 가두며 극도로 싫어했다. 나면서 부터 걷지 못한자를 고친 일을 두고 제사장은 누구의 권세로, 누구의 이름으로 한 것인지 최후의 변론의 자리에서 베드로에게 물었다. 갇혀있는 처지에도 불구하고, 살아 나올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는 자리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못 박아 죽인 예수의 이름으로 고쳤다.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예수 이름 말고는 너네도 인생의 정답을 찾지 못한다!" 아니 이게 지금 무슨 군번도 모르는 쌩뚱맞은 소리인가. 지금 베드로는 잡혔고 얼마전에 예수께서 잡히시고 십자가형을 당한 것 처럼 본인도 예수를 지지하면 본인도 위협이 있을거란 생각을 못하나? 죄송하다고 살려달라고 제가 잠시 수련회 갔다와서 은혜받아서 좀 과하게 종교생활에 심취했던 것 같다고. 싹싹 빌어도 괘씸해서 풀어줄까 말깐데 지금 도리어 잡힌자가 잡은자에게 화를내며 책망하고있네? 근데, 성경은 분명히 이야기한다. 이런게 기독교라고. 살짝살짝 봐주고 타협하는게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를 성경에서 배우지 않고 주일학교 선생님이나 교회 선배들 친구들 심지어 잘못 알려주시는 목사님 등 이렇게 배우는 시절이 길어지다 보니 지금 한국에서 생각하는 기독교란 사랑이 많기 때문에 계속, 오래도록 잘못 살아도 늘 봐주는 그런 종교가 되어있는 것 같다. 예수님이 나를 흘리신 그 절절한 사랑의 피가 새빨간 핏빛이 아니라 연분홍의 희석된 색채의 그런 신앙이 된 것 같다. 아빠가 어릴 적 말 안듣는 우리 형제에게 혼내시며 가끔 하셨던 말씀이 있다. 등따시고 배부르니깐 지금 그런 행동을 하는거냐고. 이 말을 지금 내 신앙에 적용하고싶다. 좋은게 좋은거지 라는 생각이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하는 사단이 주입하는 생각일 수 있다. 베드로 처럼은 못하더라도... 가 아니다. 성경은! 기독교인이라면 베드로처럼 하는게 맞는거라고 지금 이야기한다. 그래도 너무 부담스럽게 하면 안되지 않냐고? 맞다. 지금 베드로가 버스정류장에서 피켓들고 사람들 불편하게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는게 아니지않나. 바울이 한 것 처럼 불신자들의 언어로 말해야하고 그들의 공감대에 들어가서 교제해야하며 때로는 기다려야 하고 들을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는 것이 느껴진다면 아직 기다려야하고 힘들어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예수께서도 그렇게 따뜻하게 긍휼을 베푸셨으니까. 그러나 남에게 피해를 끼치거나 부담을 주는 자리가 아니라. 나의 신앙을 고백하는 자리라면, 내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하는 순간이라면 확실한 태도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경제적 손실이 이만큼 되는데도? 정말? 외칠 수 있나? 외칠 수 있다. 아니 죽음 앞에서 의연했던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기 때문에 예수님이 선택하신 것을 그대로 선택할거다.
<결단>
그리스도인으로써 어떻게 예수님을 닮아가야 하는지를 계속 성경에서 배울 것이다. 오늘 찐신앙인의 모습을 알려준 베드로처럼 나도 제대로 된 신앙 고백을 갖고 제자의 길이 무엇인지, 제자라면 어떤 작은 선택들로 삶을 만들어 가야할지 매순간 기도하며 성경을 읽고 배워서 살아가겠다.
[사도행전 4장 1-12절]
1.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2.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3.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5. 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6.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7.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9.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
1.세상은 원래 복음을 싫어하고 그리스도인을 가두고 핍박한다.
2.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성령이 충만함을 받아서 내 신변의 위협과 상관없이 전한다.
<묵상, 적용>
제사장,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는걸 싫어했다. 핍박하고 감옥에 가두며 극도로 싫어했다. 나면서 부터 걷지 못한자를 고친 일을 두고 제사장은 누구의 권세로, 누구의 이름으로 한 것인지 최후의 변론의 자리에서 베드로에게 물었다. 갇혀있는 처지에도 불구하고, 살아 나올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는 자리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못 박아 죽인 예수의 이름으로 고쳤다.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예수 이름 말고는 너네도 인생의 정답을 찾지 못한다!" 아니 이게 지금 무슨 군번도 모르는 쌩뚱맞은 소리인가. 지금 베드로는 잡혔고 얼마전에 예수께서 잡히시고 십자가형을 당한 것 처럼 본인도 예수를 지지하면 본인도 위협이 있을거란 생각을 못하나? 죄송하다고 살려달라고 제가 잠시 수련회 갔다와서 은혜받아서 좀 과하게 종교생활에 심취했던 것 같다고. 싹싹 빌어도 괘씸해서 풀어줄까 말깐데 지금 도리어 잡힌자가 잡은자에게 화를내며 책망하고있네? 근데, 성경은 분명히 이야기한다. 이런게 기독교라고. 살짝살짝 봐주고 타협하는게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를 성경에서 배우지 않고 주일학교 선생님이나 교회 선배들 친구들 심지어 잘못 알려주시는 목사님 등 이렇게 배우는 시절이 길어지다 보니 지금 한국에서 생각하는 기독교란 사랑이 많기 때문에 계속, 오래도록 잘못 살아도 늘 봐주는 그런 종교가 되어있는 것 같다. 예수님이 나를 흘리신 그 절절한 사랑의 피가 새빨간 핏빛이 아니라 연분홍의 희석된 색채의 그런 신앙이 된 것 같다. 아빠가 어릴 적 말 안듣는 우리 형제에게 혼내시며 가끔 하셨던 말씀이 있다. 등따시고 배부르니깐 지금 그런 행동을 하는거냐고. 이 말을 지금 내 신앙에 적용하고싶다. 좋은게 좋은거지 라는 생각이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하는 사단이 주입하는 생각일 수 있다. 베드로 처럼은 못하더라도... 가 아니다. 성경은! 기독교인이라면 베드로처럼 하는게 맞는거라고 지금 이야기한다. 그래도 너무 부담스럽게 하면 안되지 않냐고? 맞다. 지금 베드로가 버스정류장에서 피켓들고 사람들 불편하게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는게 아니지않나. 바울이 한 것 처럼 불신자들의 언어로 말해야하고 그들의 공감대에 들어가서 교제해야하며 때로는 기다려야 하고 들을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는 것이 느껴진다면 아직 기다려야하고 힘들어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예수께서도 그렇게 따뜻하게 긍휼을 베푸셨으니까. 그러나 남에게 피해를 끼치거나 부담을 주는 자리가 아니라. 나의 신앙을 고백하는 자리라면, 내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하는 순간이라면 확실한 태도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경제적 손실이 이만큼 되는데도? 정말? 외칠 수 있나? 외칠 수 있다. 아니 죽음 앞에서 의연했던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기 때문에 예수님이 선택하신 것을 그대로 선택할거다.
<결단>
그리스도인으로써 어떻게 예수님을 닮아가야 하는지를 계속 성경에서 배울 것이다. 오늘 찐신앙인의 모습을 알려준 베드로처럼 나도 제대로 된 신앙 고백을 갖고 제자의 길이 무엇인지, 제자라면 어떤 작은 선택들로 삶을 만들어 가야할지 매순간 기도하며 성경을 읽고 배워서 살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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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pel님의 댓글
- gosp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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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예수 ~~!!